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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6월|문화읽기]사라지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 - 삼성백혈병 문제를 다룬 홍리경 감독의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을 보고
07-22 18:49 | 조회 : 893
사라지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
- 삼성백혈병 문제를 다룬 홍리경 감독의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을 보고


반올림 상임활동가  권영은

장면 하나. 왁자지껄한 졸업식장. 염색과 매니큐어로 한껏 멋을 낸 여고생들 중 상당수가 삼성반도체에 입사할 예정임을 암시하는 것일까? 졸업식 영상 속에 등장한 학교를 졸업한 故 황유미 씨(22세,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2007년 백혈병 사망)도 그랬을 게다. “아빠, 나 합격했싸!(속초 사투리)” 함성을 지르며 택시를 모는 아버지를 향해 삼성 반도체 합격통지서를 흔들어 댔을  그녀. 동생 학비를 마련하고 집도 고쳐주고, 쌍꺼풀도 하고... 그녀의 일기장에는 들뜸이 담겨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얼마안 가 “제가 백혈병이래요. 죽는 줄 알았어요”라고 그녀는 울먹인다.

<사진출처: 다음카페 반올림>
장면 둘. “나와서 말해보세요, 제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삼성전자 LCD공정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려 수술 후 1급 장애인이 된 한혜경 씨는 삼성본관 앞에서 떠듬떠듬 말한다. “나 바보잖아!” 삼성이 그럴 리 없다고 믿었던 그녀는 자신에게 사과 한마디 없는 삼성이 이해되지 않는다. 어렵게 이어간 그녀의 어눌한 외침이 삼성 본관 유리벽에 부딪쳐 흩어진다. 국정감사장에서 노동자의 건강을 소중히 하겠다고 말한, 삼성의 부사장은 끝까지 “나를 좀 봐요! 나를 보세요”라는 그녀를 외면한다.
장면 셋. 남편 황민웅 씨(31세,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2005년 백혈병 사망)를 잃은 정애정씨는 삼성 본관 앞에 설 때마다 소리친다. 감독은 그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지워버렸다. 그러나, 그녀의 지워진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설비 엔지니어로 온갖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백혈병으로 사망한 남편의 죽음을 직업병으로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결연한 눈빛, 마이크를 꼭진 손. 그녀는 한없이 사랑스럽다. “같은 합창반에서 활동할 때 만났는데, 남편이 내가 눈에 띄었대~”라며 빨갛게 볼우물이 질 때, 관객들은 웃었다. 숨이 차오르고, 기억이 점점 사라지고, 목소리가 사라지던...결국엔 눈마저 감은 이윤정 씨(32세,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2012년 뇌종양 사망)를 보며 훌쩍이던 관객들 사이에서 터져나온 유일한 웃음소리였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클린룸, 기숙사에서 숨죽여 울던 오퍼레이터들(반도체 생산직 여성노동자를 지칭하는 말), 쉽게 입에 달라붙지 않는 공정을 외우다가 진짜 목소리를 잃게 된 이들. 영화의 시작과는 달리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소리만이 남았다.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인 이 얘기는 2년여 동안 푸른영상의 홍리경 감독이 반올림의 활동을 동행하며 찍은 다큐멘터리이다. 다행인 건, 삼성이 달라진 건 없지만 삼성 밖의 사람들은 그간 숨죽였고 몰랐던 소리들에 귀 기울이 시작했다는 점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만들어지고, 지지와 연대이 손길이 늘고, 전자산업여성노동자 건강모임, 노무사 모임, 변호사 모임 등이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영상도 또 하나의 마음이 모인 결과물이다. 반올림에 접수된 반도체·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제보는 현재 208명, 그 중 사망자 79명(2013.3월 기준), 여전히 산재인정도, 삼성의 사과를 받기도 힘든 현실 앞에서 홍리경 감독의 <탐욕의 제국>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공감을 얻고,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영화엔 없는 장면 하나. 이 날 영화를 함께 본 후 밤을 지샌 노래방. 부인 이윤정 씨에게 불러주던 노래를 열창하던 희수씨, 애교 넘치는 애정씨의 노래로 마음이 뭉클해졌다. 감독은 음정, 박자도 제각각이지만, 자유롭고 씩씩하게 용감히 노래했다.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기분이 좋다며 마이크를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어느새 <탐욕의 제국>에 맞서다 <또하나의 가족>이 되고 있는 이들은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으로 뭉쳐 독창이 아닌 합창으로, 코러스로, 백댄서로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 진실을 향한 이들의 목소리가 이 한편의 다큐를 통해서 더 큰 울림이 되어 퍼지기를 기대해본다. 그들이 지우고자 했던 목소리, 그러나 지워지지 않는 그/그녀의 소리에 모두 물들 수 있기를... 정말 그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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